우리가 만드는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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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쓴 시와 순례배움 [김예진]

관리자 | 2016.11.26 23:25 | 조회 80




순례를 하면서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순례 와서 더 많이 먹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것 같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거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라고 해도 일단 먹어 보는 게 습관이 됐다.

정말 밥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꽃거지로 살았다.

또 걸을 땐 잠도 중요하다. 보통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데, 회의를 하거나 일이 있어서 1시간만 늦게 자도 다음 날 엄청 피곤하고 걸을 때도 졸게 된다.

어쩔 때는 너무 졸려서 걷다가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잤던 적도 있었다. 역시 걷는 일에는 정말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거라고 생각이 든다.

이번 순례에서 처음 써 본 순례지도는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순례지도는 순례일지를 지도로 표현한 일지인데, 오늘 걸은 길 중 기억나는 장면, 쓰고 싶은 일 등을 적고 그리는 것이다.

하루 닫기를 마치고 순례지도를 쓸 때 서로 우리 오늘 어디 걸었지?”, “다리 건너고 어디서 쉬었더라?”라고 묻고, 답했던 게 정말 재밌었는데.

하루 열기, 닫기 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했던 건 리코더와 명상이다. 이번 순례에서 나는 리코더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엄청 많아졌다.

기러기, 사랑, 섬 집 아기 등등. 순례 와서 리코더도 많이 배워간다.

명상을 할 때에는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 호흡에 집중해보기도 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서 10분 정도 눈을 감고 있으면 차분해진다.

전에는 허리를 숙이고 고개도 푹 떨구고서 명상을 했는데, 순례 때 명상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순례에서 편지를 많이 쓸 줄은 전혀 몰랐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께 편지를 써 보았다.

나한테도 쓰고, 잠자리를 내어주신 분께도 매일 롤링페이퍼를 쓰고, 고마운 사람들께도 많이 쓰고.

하여튼 순례 동안 내가 쓴 편지를 다 합친다면 순례 보고서 열 바닥을 다 채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편지를 많이 쓴 덕에 편지 쓰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

~~~

순례하면서 약간 두려웠던 게 있다. 다들 REMEMBER,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도 어느 순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어느새 세월호를 그냥 사고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감춰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걷는 것이라는 걸 알고 나서,

지나가던 모든 이들에게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우리 세월호 순례단의 임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열심히 걸었다.

세월호 희생자 분들, 미수습자 분들,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들의 몫까지 열심히 걸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929일째다.


김예진<나의 순례이야기 >



201698일 목요일

같은데 다른 느낌

어제도 오늘도

20km 남짓

걷는 길이는 같은데

오늘은 어제보다

덜 힘들다.

왤까?

어제보다 오르막길도 많고

냄새도 나고 햇빛도 강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201699일 금요일

소원

오늘 궁평항에서

일몰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꼭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해에게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2016910일 토요일

자전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었다.

그분들도 힘드실 텐데.

밝게 웃어주시니까

문득 내가 짜증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20169요일 

하늘

오늘 걷는 내내 본 하늘은 신기했다.

고개를 수직으로 쭉 올려 보면

새파란 하늘 색,

천천히 지평선 쪽으로 고개를 내리면

점점 새파랬던 하늘 색이 연해진다.

명암 같이.

  

2016924일 토요일

생각

걷다가 이런저런 생각.

밥 생각 친구 생각 TV 생각

웹툰 생각 연예인 생각

그러다 한 순간 드는 생각.

, 나 지금 걷고 있지!’

 

2016926일 일요일

노는날

평소보다 더 피곤하게 지낸 것 같은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그런데 내일 걸을 생각하면,

갑자기 피곤해진다.

 

2016927일 월요일

밥당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다.

한 건 하나도 없는데, 너무 힘들다.

 

2016928일 수요일

시간

순례 때의 시간은 빠르다.

두 번 정도 걸으면 점심밥,

다시 두 번, 세 번 정도 걸으면

숙소에 도착한다.

걸으면 참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2016929일 목요일

진도가 가까워진다.

오늘은 충청남도에서 전라북도로 내려왔다.

다리 하나를 건너니 충청도가 전라도가 됐다.

생각해 보니 진도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순례가 끝나가는 걸까?

 

2016930일 금요일

맞춤법

오늘 점심밥의 메뉴는 무우국이었다.

그런데 무..국이라고?

무국, 뭇국, 무웃국, .우국?

도대체 뭐가 맞을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맞춤법인 것 같다.

 2016102일 일요일

노곤노곤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가고

시원하게 씻고

뽀송하게 말리니

온 몸이

노곤노곤,

졸음이 쏟아진다.

 

2016106일 목요일 

반 친구들

너무 친해진 것 같다.

아직 1년도 같이 안 살았는데,

엄청 많은 얘길 나누고 있다.

좋은걸까, 나쁜걸까?

  

2016109일 일요일

장어

양념장어가 아니어도

장어니까

맛있으니까

뭘 해도 괜찮다, 장어는.

 

20161010일 월요일

늦장부리는 방법

아침에 일어나 침낭에서

꾸물꾸물 꼼지락

얼마 만에 해보는 늦장인지.

너무 반가워서

계속 꾸물꾸물 꼼지락

 

20161015일 토요일

음악회

우리가 평소에 하던

간단한 시와 리코더 연주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20161016일 일요일

벌레

난 그저 벌레를 잡으려

허공에 박수를 쳤는데

어쩌다보니 두더지한테

편지를 쓰게 되었다.

벌레는 손바닥 사이를

빠져나가 버렸는데.

하하내 운명인가보다.


  

20161017일 월요일

과자

우걱우걱

와구와구

과자는 있을 때 먹어야지.

그러니까

우걱우걱

와구와구

 

20161018일 화요일 

아이들

겨우 한두살 차이인

초등학교 아이들인데

너무 귀여워보이고

어려보이고 예쁘다.

이런 게 언니마음일까?

  

20161019일 수요일

이정표

도로를 걷다 만나는

그 초록색 이정표에

진도’, ‘팽목이라는 단어가

보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20161020일 목요일

순례가

끝나버렸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1020일이 왔고

순례 46일차에

회향식으로 순례를 마무리 지었다.

어느새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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