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순례길

순례후기

순례길을 걸으면서 짧게 들은 생각들 - 유하

유하 | 2017.12.19 16:09 | 조회 103

길 위에서

 세월호 순례를 하면서 느낀 것들. (11월 19일부터 24일까지) - 유하


  붓다는 길 위에서 가르침을 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서 위없이 높은 지혜를 깨달았지만 몸을 일으켜 거리로 나갔다. 한없이 너그러운 

자비로 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다가가 감화하였다. 비록 본인은 해탈을 통하여 윤회를 멈추고 형태없이 사라질 수 있었지만 기꺼이 세상으로 

몸을 이끌고 나가 중생들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고통을 껴안는 삶을 숨이 다할 때까지 산 것이다.


  책상에 앉아 머리로 이것저것 상상할 수는 있지만 길 위에서 온몸으로 겪어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느낄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골돌히 공부에 집중하는 일 하기 전에 공부를 왜 하고 싶은지, 왜 해야하는 지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성은 

마땅히 자신이 할 일을 알고 묵묵히 해나갈 때 생긴다. 자기 등에 자신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그저 길을 걷는 낙타가 되지 않기 

위해 짐들을 내려놓고 길 위로 훌훌 나선다. 머리만 큰 가분수가 되기 싫어서 길 위로 나선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간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은 절과 같은 종교시설도 아니고 대학이나 학교같은 교육기관도 아니다. 그 곳은 길 위에서 만나는 공동체, 철학자, 

교육자, 활동가, 농부, 서민, 소시민에게 있다.윤구병 선생은 철밥통이 보장되지만 공허함을 느끼던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토지로 돌아가 농부가 

되어 변산공동체를 이끌었다. 변택주 작가는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할 뿐이라며 이른바 똑똑한 지식인들이 떠나가도 영세중립 평화통일 코리아를 

외친다. 정웅기 선생도 한국 경제 성장에 그늘에 가려져 소외되버린 마을들을 잇기 위해 길 위로 나섰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침묵의 언어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길이 있어서 사람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월호 순례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순례자이면서 동시에 구도자였다. 길을 구하는 자는 의미와 뜻을 세워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는 삶에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삶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처절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이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삶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군대라는 곳에서 난 얼마나 많은 폭력을 당했고 폭력을 가했는가. 상당부분 이미 내면화가 되서 내 안에서 

수직적 서열 관계와 긴장감, 상과 벌, 명령과 복종, 폭력이 당연시 느껴져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고 주류적 길에 편입하라고

하는 것도 폭력이다.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에서도 그런 죽이는 마음이 나지는 않나. 나 스스로에게도 참 슬프고 안타깝지만 한국 남자

모두가 군대에 가야해서 억압과 통제, 전쟁과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혼자 살려고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양심을 지키고 배려하고 상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의 앞에는 쫙 깔린 포장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꼬불꼬불 비포장도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걸을수록 그 길이 잘 나게 되고 더 걷기 쉽고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와 마을, 그리고 배려와 상생, 자연과 조화,

생명과 평화의 길로 살길 바란다. 


 변산공동체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쥐눈이콩 고르는 작업을 3시간 했다. 지푸라기, 돌맹이, 쥐눈이콩, 팥, 녹두들이 한데 섞여있는 것을 넓은 

그릇에 옮기고 슬슬슬슬 그릇을 흔들면 콩과 이물질이 분리된다. 콩도 모가 나고 삐뚤삐뚤 울퉁불퉁 생긴 녀석들은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고 

둥글둥글 생긴 녀석들은 옹기종기 쫄래쫄래 아래로 내려온다. 그러면 쉽게 둥근 콩을 고르고 찌그러진 콩은 걸른다. 나도 울퉁불퉁 마음은 걸르고 

둥글둥글 마음을 갖고 싶다.


 콩을 고르는 작업이 지루해질 때 쯤 변산공동체에서 고등학생인 다원이가 내 왼쪽 자리에 앉았다. 다원이는 19살, 검정고시를 치렀고 

방송통신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초중학교는 광주에서 발도로프 학교를 나왔고 아빠는 그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다 겪는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고등학교 1학년은 일반계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계속 다니면 시간낭비만 될 거 같아서 다시 변산 공동체로 와서 

더불어 살고 같이 일하면서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다원이랑 얘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약간은 수줍어 하지만 솔직하고 할말은 다 하는 

모습이 퍽 정겨웠다. 대안교육을 받은 학생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변산공동체에서 20대 청년은 3명에 불과했다. 

젋고 어린 청년, 청소년들이 공동체를 같이 일궈나가고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동참하고자 순례에 갔다.  처음에 내 인생에 대한 고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 떠난 순례에서 생각이 차츰 넓고 둥글게 커져서

공동체, 마을, 한국 사회, 세계까지 퍼져나갔다. 나를 위한 순례는 곧, 모두를 위한 순례였다. 내가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같이 걷고 먹고 잔

순례길에서의 만남은 정말 소중했다. 누군가의 말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저 삶으로 실천해내는 사람들과 감화되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항상 곁에서

시나브로 나도 좋은 영향을 주고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군부정권에 폭력적인 문화를 내면화 시켜왔거나, 혹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해서 땅값을 

천문학적으로 올려버린 기성세대들이 원망스럽다. 기성세대가 남긴 군사정권의 잔재와 적폐들을 방치하고 오히려 그것을 키운 이른바 지식인, 이른바

 교수, 이른바 검사, 이른바 군인 이른바 국가 공 권력기구들. 하지만 언제까지고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어른들을 원망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함을 느꼈다. 앞으로는 평화와 생명, 더불어 살기, 자연, 환경,

독립, 자생 이런 가치에 나도 동참하고 한걸음씩 손잡고 나아가려고 한다.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은 자연을 닮는다. 산을 닮는다. 산은 그 큰 하나의 땅으로 모든 생명을 품어준다. 그리고 그 산 안에는 나무가 숨쉬고

 날짐승이 뛰놀고 새들이 날고 물이 흐른다. 모두가 공생하고 상생한다. 


순례 때 들었던 음악이 있다.

이승환의 물어본다

https://youtu.be/kY-3jdut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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